당대(618~907)는 중국 문화가 융성했던 시기로, 공필 화조화 역시 산수화와 인물화의 배경에서 벗어나 독자적 화풍을 형성한 후 점차 인물, 산수, 화조화로 나뉘어 독립적인 회화로 발전하였다. 당대 초기의 공필 화조화는 기법으로 볼 때 선명한 청색 위주였으며 표현 방식은 화려하지 않고 단순했다. 《선화화보宣和畫譜》에 많은 화조 화가의 기록이 보이는데, 당 초기 염립덕, 염립본은 인물화와 화조 사생에도 뛰어났다. 염립덕은 <두계도頭雞圖>를 남겼고, 염립본은 연못에 있는 물새를 그렸다. 설직薛稷은 두루미를 그린 것으로, 반란은 공작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한 분야에 전문적인 화가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조패曹霸, 한간韓幹, 위언韋偃은 말을 한황韓滉, 대숭戴崧은 소를 그렸는데 특히 한황의 <오우도五牛圖>는 생동감 있는 사실적 형상이 돋보인다. 오대십국(907~979)은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으며, 빈번한 전쟁으로 인해 회화의 발전이 위축되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서촉과 남당은 지리적 영향으로 전화를 모면할 수 있었고, 따라서 사회가 비교적 안정되었으며, 특히 양국의 왕이 모두 회화를 좋아하고 중시함에 따라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양국은 궁중 화원인 한림도화원翰林圖畫院을 설치하여 서촉 “성도成都”와 남당 “건업建業”은 중국 회화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화조화는 당대의 사생 전통 방식을 계승 발전했으며 뛰어난 화가가 많이 배출되었다. 공필 화조화는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갔고, 서촉과 남당을 중심으로 황전과 서희를 대표로 하는 두 개의 큰 화파가 형성되었다. 두 작가의 작업방식은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필화가 주를 이루었다. 서희徐熙(907~959)중국 오대십국 남당의 화가이다. 강남 종릉(현재 강소성 남경) 출신으로, 화죽花竹, 소과蔬果, 초충화草蟲畫를 잘했으며 채색에서 자연의 정취를 강조했다. 주체에 수묵水墨을 더해 자연의 아름다운 흥취를 풍기게 하는 강남 화풍을 대표했다. 작품으로는 <설죽도雪竹圖>, <두화청정도豆花蜻蜓圖>, <옥당부귀도玉堂富貴圖> 등이 있다. 황전과 서희를 “황가부귀 서희야일黃家富貴 徐熙野逸”로 설명했으며, 중국 화조화가 완숙기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 다른 풍격과 기법을 형성해 중국 화조화의 토대가 되었다. 황전黃筌(903~965) 중국 오대십국 촉의 화가이다. 자는 요숙要叔이며, 서촉 성도 출신이다. 황전은 사슴과 두루미를 그리는 데 뛰어났다. 그의 화조화는 당 이후 공필화 진채장식 형식을 계승하여 더욱 확대 발전시켰다. 궁중 화가였기에 궁정의 귀중한 새와 기이한 꽃, 돌 등을 깊이 관찰하여 묘사하였는데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특색이다. 또한 화조의 형태와 습성을 깊게 관찰해 사실적인 묘사를 한 것이 특징이다. 황전의 화법은 먼저 먹을 사용해 윤곽선을 그리고 먹선 안에 색을 채워 표현하였는데, 후대 사람들은 이를 “구전법鉤塡法”이라고 칭하였다. 황전의 화법은 오대와 북송에서 커다란 화파를 형성, 100여 년 이상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공필 화조화 쌍구파雙鉤派*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궁중에 보관된 <사생진금도寫生珍禽圖>가 전해지는데, 이 작품은 글의 내용으로 보아 큰아들 황거보를 가르치기 위한 견본으로 추정된다. 쌍구는 구전법의 다른 이름이며, 선으로 먼저 윤곽을 그리고 안에 색을 칠하는 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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