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시기에는 도시 및 농촌의 생활풍습을 보여주는 인물화가 대량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회화의 소재는 귀족 문화에서 일반 백성의 삶으로 옮겨갔고 일반 백성의 생활과 감정, 심미관을 보여주었다. 이는 송나라 회화 발전의 새로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와 작품으로는 이숭李嵩의 <화랑도貨郎圖>, 장택단의 <청명상하도>, 소한신의 <추정희영도>, 유송년의 <경직도耕織圖>, 왕거정王居正의 <방거도紡車圖> 등이 있다. 무종원武宗元(980~1050)하남 백파白波 사람이며, 초명은 종도宗道, 자는 덕지德之이다.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郞을 지냈다. 도석상道釋像을 잘 그렸는데, 신령한 색채가 초서草書처럼 꿈틀거렸다. 종교화, 인물화의 대표 화가인 무종원은 <조원선장도朝元仙仗圖>에서 도교 전설 속의 남극천제군南極天帝君과 동화천제군東華天帝君이 여러 신선을 거느리고 현원황제玄元黃帝를 알현하러 가는 의장 행렬을 그려냈다. 그림은 전반적인 통일성 속에 변화가 있고 번잡한 화면이 질서정연하게 처리되었으며 리듬감이 넘친다. 선은 웅건하고 힘이 있으며 유창하다. 인물은 표정이 밝고 활기가 넘치며 옷소매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오대당풍吳帶當風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장택단張擇端(1085~1145)북송의 화가이며, 자는 정도正道이다. 산동山東 동무東武 사람으로, 선화宣和 때 한림도화원에서 대조직을 맡았다. 그러나 벼슬을 잃고 나서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명의 왕몽단王夢端은 《서화전습록書畫傳習錄》에 장택단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회화에 능하고 계화界畫*를 전공했으며, 특히 배와 마차, 다리, 성곽, 도로 등을 즐겨 그렸으며 따로 한 화파를 이루었다.” 장택단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가히 풍속화의 본보기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중국화 특유의 기법인 산점투시散點透視* 방법을 운용하고 파노라마식 구도로 송나라 도시 사회생활의 각 방면을 재현해냈다. 필법은 섬세하고 정교하며, 선은 힘 있고 노련함이 묻어났다. 공필과 사의의 느낌을 겸한 기법을 사용했으며 소박하게 설색하였는데, 그림은 예술적 매력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매우 소중한 역사 문헌적 가치를 지녔다. 중국 고대 회화 역사상 불후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작품으로는 <서호쟁표도西湖爭標圖>와 <청명상하도>가 있다. 계화는 자를 이용해 정확, 세밀하고 입체감 있게 그리는 중국의 미술 화법이다. 산점투시는 그림에 여러 개의 시점이 있는 원근법으로, 서양 회화에는 하나의 시점으로 물체를 바라보는 일점 투시법이 있다. 소한신蘇漢臣(1094~1172) 변량汴梁 허난성 개봉 출신이라는 설도 있고 전당錢塘 절강성 항주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휘종 때 화원대조가 되고, 고종 때 복관되었다. 효종 초에 불상을 그려 칭송받고 승신랑承信郞에 임명되었다. 유종고劉宗古에게 배웠고, 불교·도교 인물화와 사녀도에 능했으며, 특히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잘 그렸다. 필법은 섬세하고 설색은 밝고 화려하며 그림은 정취가 넘친다. 사실적 묘사에 뛰어난 송나라 화원의 대표적 화가로, 작품에 <추정희영도秋庭戱嬰圖>, <화랑도貨郞圖> 등이 있다. 유송년劉松年(1155~1218) 남송 임안臨安 전당錢塘 출신이며, 청파문淸波門에서 살아 유청파劉淸波라 불렸다. 효종 때 화원의 학생이 되었고, 광종 때 화원대조가 되었다. 인물화의 한 분야인 초상화에도 능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중흥사장도中興四將圖>가 있다. 초상화는유광세劉光世, 한세충韓世忠, 장준張俊, 악비岳飛 네 장군을 그린 것인데, 인물의 비례가 정확하고 자태가 자연스러우며 의복을 그린 선은 힘 있고 유창하며 아름답다. 작품으로 <송태종상宋太宗像>, <송인종황후상宋仁宗皇后像>, <나한도羅漢圖> 등이 있다. 이당李唐(1066~1150) 송나라 맹주孟州 하남성 하양河陽 사람으로, 자는 희고晞古이다. 이당의 그림에는 애국 열정과 민족 절개를 표현하는 역사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이당의 <채미도採薇圖>는 상나라 말기에 귀족인 백의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에서 나물을 뜯어 먹을지언정 주나라 곡식은 먹지 않으려다 결국 굶어 죽은 역사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림 속의 백의와 숙제 두 형제는 황야에서 서로 마주 보며 땅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의 표정과 자태는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백의의 모습은 겉으로는 평온하고 강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느끼게 한다. 그의 고집스런 성격과 혼신에서 풍기는 정의감이 붓끝에서 살아났다. 작품으로는 <채미도>, <진문공복국도晋文公復國圖> 등이 있다. 이공린李公麟(1049~1106) 자는 백시伯時, 호는 용면거사龍眠居士이다. 서주舒州 출신으로, 북송 시기의 관리이자 화가이다. 이공린은 사생寫生을 중요시했다. 인물화에 관해서는 형상의 부각을 중요시했고 과감하게 전통의 틀을 타파했으며 혁신 정신이 강했다. 그는 다양한 지역과 민족 계층의 외모와 성격적 특징을 그려냈다. 이공린은 고개지의 부드러움과 오도자의 웅건함을 결합해 인물의 정신세계를 부각하는 동시에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신중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선의 내재적 아름다움을 표현함으로써 착색하지 않고 단순히 묵필선만으로 형상을 그리는 “백묘” 화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가 선을 사용함에서의 굽음과 곧음, 강함과 부드러움, 가벼움과 무거움, 성김과 빽빽함, 허와 실 등의 변화에는 매우 풍부한 운율과 리듬감이 있으며 후세에 심원한 영향을 주었다. 대표작으로 <유마힐상維摩詰像>, <구가도九歌圖>, <오마도五馬圖>, <임위언목방도臨韋偃牧放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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