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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

진·한 및 위·진남북조 공필 인물화

by everything-yeah 2022. 7. 17.

한대에 이르러 인물화는 점차 사의寫意의 느낌을 띠고 내용도 날로 다양해졌는데, 고분 벽화와 화상전畫像殿, 백화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나라의 인물화 유적은 매우 드물어, 섬서 함양 궁전 유적지에서 출토한 <거마인물벽화조각>에서 한두 점 엿볼 수 있는 정도이다. 한의 유안劉安은 《회남자淮南子》에서군형君形근모실모謹毛失貌의 인물화 이론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는 당시 인물화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972년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馬王堆 고분에서 발굴된 서한 초기에 속하는 T자형 백화이다. 이 백화는 먼저 윤곽선을 그린 후 다양한 색을 넣었으며 주사朱砂, 석청石, 석록石綠 등 광물 안료로 채색하였다. 색채는 선명하고 묘사가 생동적이며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화적 내용이 표현되었다. T자형 백화는 상··하로 삼등분하여 맨 위는 천상의 모습을, 중간 지점은 묘지 주인의 생전 모습과 일상생활을 표현하였다. 맨 아래의 부분은 물고기, , 거북이, 뱀 등이 있는 저승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한 초기에 유행하던 황로黃老사상과 유가사상 및 후장厚葬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서한 중·후기 하남 낙양 복천추묘蔔千秋墓 벽화, 소구燒構 61호묘 벽화, 동한시대 하북 망 도望都 1호묘 벽화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구 61호묘 벽화는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홍문연鴻門宴등 역사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각 인물의 다른 성격과 희극적인 모순과 충돌을 생동적으로 표현하여 인물화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진남북조魏晉南北朝의 역사는 한마디로 전쟁과 분열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인물화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진남북조 인물화의 선은 비교적 단순했다. 용필은 중봉中鋒으로 균일하고 힘이 있으며, 묵선墨線은 굵기가 시종일관하여 소위불가견기반 제不可見其盼際라고 한다. 당시의 화가들은 이러한 단순함 속에서 다채로운 품격을 그리려 노력하였다. 춘잠토사 春蠶吐絲(봄누에가 명주실을 뿜어내다), 수경철선瘦勁鐵線(선이 가늘면서도 힘이 있다), 유창행운 流暢行運(자연스럽고 막힘이 없다)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나 정치 이념, 철학에서 벗어나 개인의 정서와 사상을 자유롭게 묘사하는 그림도 이 시기에 볼 수 있다. 화가로는 고개지와 남북 조시대 양나라의 장승요가 대표적이다. 고개지顧愷之(344~406년경) 재절才絶, 화절, 치절痴絶로 불린 동진의 화가로, 자는 장강長康, 호두虎頭로 불렸으며, 강 소성 무석無錫 출신이다. 그는 회화이론서인 《화평畵評》,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 등을 통하여 체계적인 회화이론을 선보였다. 그의 인물화는 세부 묘사를 중요시했으며 인물의 정신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잘 알려진 작품은 <여사잠도女史箴圖> <낙신부도洛神賦圖>, 비단 바탕에 엷은 채색을 한 그림으로 선이 침착하고 안정적이며 조형이 예스럽고 소박하다. 역사 이야기와 현실 생활을 결합하고 현실주의의 창작 기법을 사용해 선으로 조형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또한 형상과 정신을 겸비한 작품을 통해 저자의 이론사상을 관철했다. 그의 대표작 는 궁중의 시녀들이 지켜야 할 덕목을 그린 작품으로, 화장하는 여인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게 하는 구도로 뛰어난 솜씨로 알려졌으나 아쉽게도 현재 전해 내려오는 작품은 당대 모사본만 남아 있다. 불교 예술이 전래된 후 인물화는 색을 표현하는 법과 훈염법染法 등 외국의 표현 수법을 흡수하고 융합해 부단히 완성도를 높여갔다. 훈염법의 운용으로 선의 표현은의 표현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대표작으로 <여사잠도>, <낙신부도>, <열녀인지도列女仁智圖>, <낙개부도洛愷賦圖> 등이 있다. 장승요張僧繇(502~557) 양나라 오현吳縣 사람으로, 자는 경우景猷, 호는 오원吾園, 또는 취명거사醉瞑居士이다. 일찍이 궁정의 비각秘閣에서 그림을 관장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 양무제가 불교를 장려하면서 사찰을 짓고 탑묘塔廟를 장식할 때 장승요에게 장식화를 그리게 하여, 불화와 도석인물道釋人物 등 대규모 그림을 그렸다. 장승요는 그리스·로마풍의 불교 양식인 간다라 미술의 기법을 흡수하여 요철훈염법 凹凸染法으로 인물 형상과 불상을 그렸는데,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6법을 겸비한 화가로 고개지, 육탐미陸探微와 함께 칭송되었는데, 산수와 인물, 영모翎毛* 등을 두루 잘 그렸으며, 장승요의한두 획으로 이미 형상이 그려진다.”는 소체疏體가 생겨났다. 작품으로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산수도山水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 등이 있다. 사의는 그림의 물체 형상보다 내포된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한다는 뜻이다. 《회남자》의 설산훈說山訓군형근모실모론은 그림을 그릴 때 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리려다 그 얼굴 전체의 모습을 잃는다. 는 뜻이다. 황로사상의 황로는 황제와 노자를 가리키며 치국의 법가사상과 도가사상을 말한다. 이도살삼사는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의 고사로, 세 명의 무사에게 두 개의 복숭아로 공을 다투게 하여 모두를 제거하는 계책이다. 훈염법은 색채의 농담과 명암으로 깊고 얕음과 원근감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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